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장미빛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사이, 그 비전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세제와 법안 방향을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말과 행동이 따로 간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신호탄은 세제 개편에서 터졌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은 오히려 강화될 처지에 놓였고 기업과 가계 모두의 부담으로 지적돼온 상속세 개편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노사관계 불확실성을 키울 '노란봉투법' 논의까지 겹치며, 자본시장과 기업 활동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논의는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종목당 50억원으로 유지돼오던 대주주 보유 기준이 10억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는 '고액 자산가'만의 문제로 여겨졌던 대주주 과세가 사실상 일반 투자자까지 확장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기준 시점은 연말, 과세 대상은 주식 보유액이다. 투자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연말마다 매물을 쏟아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개편안이 거론된 직후 증시는 흔들렸다. 발표 당일 하루만에 110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증발했다. 슬롯 게임원은 보고서를 통해 '해당 규모는 하루 8조원의 민간 소비가 사라진 것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코스피 5000을 외치면서 정작 매도를 부추긴다'는 말이 퍼졌다.

2000년 대주주 과세 기준 도입 당시 10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이 대상이었지만 ▲2016년 2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투자자들의 목을 조였다. 이후 2023년 다시 50억원으로 완화됐지만, 또 다시 10억원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세제 논의가 몇 년 사이 잇따라 강화 기조로 이어지면서, 시장은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진 상황에 치닫았고, 장기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상속세 개편은 필요성만 거듭 확인될 뿐, 정작 속도는 더딘 '뜬구름'이다. 정부는 기존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국회 문턱에 걸려 논의만 이어질 뿐 구체적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기업과 가계 모두의 부담으로 지적돼온 과세 구조임에도, 여전히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약속'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최고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높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상속 시 20% 할증 과세까지 더해지니, 사실상 기업 승계는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노란봉투법 논쟁까지 불을 지피고 있다.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인데, 재계는 "노사 갈등을 더 키울 법안"이라고 반발한다. 투자 환경의 안정성을 우선시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불확실성을 자초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투자자들의 시선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향하고 있다. 불합리한 세제와 뒤엉킨 법안 속에서 국내 시장에 자금을 묶어둘 이유가 점점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자본시장 주요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주자의 공모 해외투자펀드 순자산은 전년보다 62% 늘어난 134조원에 달했고, 해외투자 상장지수펀드(ETF)는 무려 128% 증가해 63조원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은 국내주식형을 앞질렀다.

세제와 제도는 단순히 세금을 거두는 장치가 아니다. 시장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기반이자, 기업과 가계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틀이다. 그러나 지금의 방향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기업 성장이라는 큰 그림을 말하면서도, 정작 내놓는 제도는 투자와 기업 승계를 옥죄고 있다.

올해가 저물기 전, 정부와 국회가 시장의 언어를 이해하고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관된 정책과 자본시장의 안정을 되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