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횡설수설/권순활]카 심바 슬롯, 일자리, 부패

카 심바 슬롯개혁위원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몇 년 전 강연에서 “게으른 공무원이 국가에 덜 해로울 수도 있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공직자의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옹호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이런저런 명분으로 카 심바 슬롯를 늘리고 권한과 자리를 확대하려는 행정 권력의 속성과 그 후유증을 꼬집은 지적이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명감에 불타 기업 카 심바 슬롯에 나설수록 나라와 지역 경제를 더 망치기 쉽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1121개 산업 가운데 진입 카 심바 슬롯가 있는 산업은 50.2%에 이른다. 인허가 카 심바 슬롯의 99%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포지티브 카 심바 슬롯’ 방식이어서 공무원의 재량권이 크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카 심바 슬롯 순위는 181개국 가운데 23위, 창업카 심바 슬롯 순위는 126위였다. 순위가 뒤로 갈수록 카 심바 슬롯가 심하다는 뜻이므로 세계 15위의 경제력에 어울리지 않는 ‘카 심바 슬롯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지나친 규제는 경제 활력과 일자리를 줄이고 공무원 부패를 조장한다. 산업연구원(KIET)은 진입 규제를 10%포인트 줄이면 7만5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분석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규제가 매년 경제성장률을 0.5%포인트씩 떨어뜨린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장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부패를 줄이면 최대 2%포인트의 추가 경제성장과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환경오염 방지나 약자 보호, 핫머니 규제나 금융건전성 감독처럼 정당한 규제도 있지만 상당수 규제는 ‘착취와 유착의 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법제처가 인허가 제도의 기본 틀을 바꿔 내년 말까지 372건의 관련 카 심바 슬롯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던 카 심바 슬롯개혁 구호를 무색하게 만든 ‘포지티브 카 심바 슬롯’ 방식 대신에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라는 ‘네거티브 카 심바 슬롯’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 권한인 법률 개정에 앞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시행령부터 개정해 카 심바 슬롯완화에 적극 나서라고 지시했다. 국민과 기업의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카 심바 슬롯개혁이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