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버 슬롯, 재정낭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 못하면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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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구범 2025-03-25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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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 슬롯, 지역경제 활성화 아닌 학원비 같은 사교육비로 사용하는 경우 많아
조세재정연구원, '모든 지자체가 버 슬롯를 발행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사라질 수 있다'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 초래, 선진국들 버 슬롯 폐지 정책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버 슬롯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목적은 영세 소상공인을 돕고, 지역 경기를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안타깝게도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부작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버 슬롯의 부정적인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학원비 납부용으로 낭비되는 버 슬롯는 소상공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준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상품권을 발행했지만, 음식점이나 소상공인보다는 학원비와 같은 사교육비로 사용되었다.
서울시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도까지 발행된 서울사랑상품권 중 19.6%(7285억 원)가 입시학원 등 사교육비로 쓰였다. 이는 같은 기간 식당 등 음식업 점에서 사용된 금액 18.9%(7047억 원)보다 높은 수치로 사교육비에 치중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본래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버 슬롯가 사용되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에게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버 슬롯는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민 세금이 사교육비로 들어간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버 슬롯에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갔지만 그만큼 효과가 미비한 것 역시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추가적으로 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지자체가 버 슬롯를 발행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버 슬롯는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다. 지난해만 20조원 규모의 버 슬롯가 발행됐다. 최대 10% 할인율 적용을 고려한다면 2조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심각한 재정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버 슬롯는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한다.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일수록 버 슬롯를 많이 발행하여, 부유한 주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성남시와 같은 부유한 지자체는 버 슬롯 발행을 매년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같은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버 슬롯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못하는 상태다. 특정 지자체가 버 슬롯를 많이 발행하면 해당 지역 소상공인들은 매출이 증가하지만 인근 소상공인의 매출은 감소해 '제로섬 게임’이 된다.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결국 모든 상황에서 이득이 '0'인 경우를 말한다.
인접한 A 지자체와 B 지자체에서 소상공인들이 유사한 업종의 음식점을 영업하고 있다. 부유한 A 지자체는 B 지자체보다 버 슬롯를 많이 발행해 B 지역 사람들이 A 지역에 와서 소비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버 슬롯를 지원받는 곳은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지원받지 못한 곳은 손해를 본다.
해외 선진국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버 슬롯를 도입한 사례가 있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거래 수수료 등 여러 단점이 부각되면서 사용이 중단되거나 폐지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의 브리스톨 파운드 제도는 지역 상점과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운영 과정에서 거래 수수료와 관리의 복잡성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폐지되었다.
버 슬롯는 재정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폐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정부는 제정 낭비를 방지하고 비효율적인 부작용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구범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